2021년부터는 한라산의 정상,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는 사전에 미리 등산 예약을 해야 합니다. 백록담은 성판악, 관음사 코스를 통해서만 등반할 수 있는데 이 두 코스 등반이 사전예약제로 변경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등반 이틀 전에야 한 자리 남은 자리를 운좋게 예약할 수 있었지만, 백록담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등반하실 분들은 미리미리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관음사 코스는 편도 8.7km 코스로 9.6km인 성판악보다는 짧지만, 성판악보다 조금 더 힘든 코스입니다. 하지만 산행 중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성판악보다는 뛰어나니 다리가 튼튼한 분들은 충분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등산로 곳곳마다 볼 수 있는 한라산 등반코스 안내도입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난이도 A의 힘든 코스입니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부터 탐라계곡 목교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는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평탄한 길로, 제대로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구간이지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물이 차오르는 길인가 봅니다. 물에 젖은 미끄러운 돌에 넘어지지 말고 잡고 가라고 줄을 설치해 놓았네요.
시원한 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외롭게 핀 이름 모를 꽃도 볼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릿대 옆에 핀 꽃이길래 조릿대에도 꽃이 피나 신기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릿대 옆에 있는 어느 이름 모를 풀에서 봉오리를 연 꽃이네요. 궁금해서 무슨 꽃인가 찾아봅니다.
산수국꽃일 확률이 99%라니 산수국꽃이 맞겠죠? 처음 보는 예쁜 꽃, 꺾어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님에게 선물하고 싶지만 다른 등산객들도 작은 행복 느끼시라고, 고이 내버려둔 채 정상을 향한 길을 재촉합니다.
쉬엄쉬엄 한적한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첫 난이도 A 코스가 시작되는 탐라계곡 목교에 도착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계단이 예사롭지 않네요. "이제 시작이네" 등에 맨 배낭을 움켜잡고 계단을 올라가니, 생각보다 올라갈만합니다. 다행히 제가 싫어하는 계단길은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르막길은 계속 이어지네요. 그나마 계단이 아닌 것에 만족하고 오르막 길을 계속 오릅니다. 난이도 A의 어려운 코스라더니 별로 어렵지 않네요. 생각보다 쉽게 어렵다던 첫 번째 코스를 무사히 완등 하고,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삼각봉 대피소 화장실은 생각보다 깨끗합니다. 100% 수세식은 아니지만,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도 아닙니다. 화장실에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고....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출발한 지 3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입니다. 삼각봉 대피소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30분 정도 쉬다 가기로 합니다.
삼각봉 대피소부터 용진각 현수교까지 2.7km 구간은 관음사 코스의 백미입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탁 트인 시야에 펼쳐지는 경치는, 4년 전 조지아에서 걸었던 우쉬굴리 트레킹 코스의 경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경치에 취해 능선길을 따라 걷다 보니 관음사 코스의 마지막이자 두 번째 난이도 A의 코스가 나타납니다.
이 계단이 시작점입니다. 끝이 안 보이는 계단입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느덧 마흔 살을 훌쩍 넘긴 제 나이 때문에 힘든 것만은 분명히 아닙니다. 저와 같이 올라가던,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처럼 보이던, 건장한 20대 젊은 남자들도 f로 시작하는 미국 욕을 남발하며 느림보 거북이만큼이나 느릿느릿 올라갔거든요.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이런 끝도 없는 계단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중간중간 얼마나 올라왔나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충분히 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산할 때, 다리가 덜 후들거리고 무릎이 덜 시큰거립니다.
그래도 그나마 힘을 주는 건 중간중간 펼쳐지는 아래와 같은 그림 같은 경치입니다.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헬기 착륙장이 보이다면 관음사 코스의 제일 힘든 구간은 끝난 겁니다. 이곳부터 백록담까지는 약간은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한라산 고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상나무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상나무를 감상하며, 힘든 길을 올라오느라 흠뻑 흘린 땀을 식히며 얼마 남지 않은 백록담까지 마지막 힘을 내어봅니다.
12시 조금 넘긴 시간,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백록담에 도착합니다. 입산 인원을 통제해도 백록담에 오니 사람이 많네요.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백록담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건 포기합니다.
최근에 비가 제법 와서 백록담에 물이 많이 차있을까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씨는 정말 좋아서 백록담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지난번 왔을 때는 안개 때문에 잘 못 봐서 서운했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맑은 하늘에 백록담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좋은 날씨에 잘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하산은 성판악 코스로 합니다. 성판악 코스는 길에 돌이 많아서 가뜩이나 쉽지 않은데, 무릎까지 아파서 내려오는데 고생 좀 했습니다. 오전에 만났던 f를 입에 달고 다니던 미군처럼 보이던 건장한 외국 청년들은 돌길을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뛰어내려 갑니다. 흠....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부럽습니다.
관음사 코스는 제가 다닌 한라산 코스 중에 제일 힘들었습니다.(저는 한라산 모든 등산 코스를 경험했습니다) 3일이 지난 오늘도 제 장딴지는 아직도 회복 중입니다. 다시 한라산을 가라면 저는 경치가 제일 좋은 영실코스를 가겠습니다. 그래도 꼭 백록담을 보고 싶을 땐 조금은 더 수월하지만 지겨운 성판악 코스로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관음사 코스로 내려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팁입니다. 평소에 등산을 자주 하지 않으시는 분이지만 백록담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오르시는 분들은 꼭 무릎보호대 또는 무릎에 테이핑을 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여러분의 다리는 소중하답니다.
혹시라도, 한라산만큼이나 멋진 조지아 트레킹 코스가 궁금하다면 아래 포스팅도 찾아보세요.
2021.03.24 - [여행지 소개] - 조지아 여행(메스티아-우쉬굴리 트레킹) 추억(정말 파란 하늘을 보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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